그만 배우고, 니 춤을 춰라
김신웅
작성일 : 19-10-26 00:53  조회 : 37회 

세계는 창의 시대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두께가 약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은 나뭇잎 하나를 띄울 수 있고, 어떤 물은 소줏잔 하나, 그리고 어떤 물은 거대한 배도 띄운다. 최진석 선생의 유튜브 강의 한 편을 대충 더 들었다. 들어가 보자.
 
최진석 선생이 쓴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내게 걸작이었다. 왜냐하면, 그 책을 읽고 난 영업 성과가 2배 이상 좋아졌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었다. 오로지 내 느낌대로, 나의 주체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힙합이란 장르가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것은, 흑인들이 자신들의 특성에 맞게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흑인들은 노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질문하지 않고, 그냥 자기들 멋대로 불러버렸기 때문에 힙합이 만들어진 거다.
 
장르는 주로 선진국에서 만들어진다. 후진국은 그 장르를 단지 모방할 뿐이다. 자동차란 원본은 선진국이 만들었고, 후진국은 자동차를 베껴 만들 뿐이다.
 
아직 한국은 창의가 먹히지 않는다. 나는 괘념치 않는다. 나는 오직 나의 길을 갈 뿐이기 때문이니까. 나는 스스로 창의적이라 생각한다. 물론 오버일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주변과 소수와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이곳과 이들이 중심과 다수를 업어버리는 것이 역사다.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덕분에 내 스텝에 맞춰 춤을 출 용기를 갖게 됐다. 앞선 칼럼에서 말했지만, 삶은 용기의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이 오늘도 지루하게 사는 이유는 다른 무슨 이유가 아니라, 바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최진석 선생도 철학 강의에서 오늘 그 이야기를 했다. 인류 역사에서 성인이 10명도 안 되는 이유는 그만큼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수강하는 분들에게 자잘한 것에 개의치 말고, 용기를 낼 것을 주문했다.
 
강의에서 ‘너는 너의 삶을 살고 있느냐?’ 이 물음을 던졌다. 이 질문을 하는 자만이 위대해지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했다. ‘너는 너냐?’ 자기가 자신이 될 때 우리는 위대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대함이 아니라, 너는 너냐다.
 
‘니 춤을 춰라’ 이 말은 어느 춤꾼 할머니가 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보통 무언가를 시작할 때, 배우러 다닌다. 최진석 선생은 그러지 말라는 거다. 네 멋대로 해야, 잘할 수 있다는 거다. 네 인생을 살아라. 모방품이 되지 말고.
 
물론 우리는 앞선 인류의 스승들의 유산에 흠뻑 젖을 필요는 있다. 그런데 그건 어느 선에서 끝마쳐야 한다. 그 후에는 자기 길을 열어야 한다. 조지프 캠벨이란 신화학자는 말한다. 네가 가는 길이 뚜렷히 보인다면, 그건 너의 길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창조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겁내지 말라. 오히려 지금 삶이 지루하지 않느냐? 그렇게 비루한 삶을 너는 그토록 원했느냐? 두려워 말라. 그대도 가슴 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단지, 조금의 용기를 내면 될 뿐이다.
 
비슷한 복제품이 되지 말자. 내 안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자. 더 이상 남을 배우려 들지 말자. 너는 니 춤을 추면 된다. 너는 너의 인생을 살면 된다. 누구의 인생이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
 
삶은 하나의 정답이 정해진 길이 아니다. 아직 우리가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길이 있다.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 할까? 다만 자기 길을 갈 때의 느낌은 이렇다. ‘내가 걷는 발걸음을 보라. 자신의 목표에 다가서는 자는 춤을 춘다.’ 그렇다. 약동하는 삶 이게 바로 정답이다.
 
최진석 선생의 유튜브 강의는 우리 삶을 그렇게 약동하게끔 동기부여가 된다. 너가 너가 아닐 때, 너의 인생이 너의 인생답지 않을 때, 그의 강의를 듣자. 그러면 너는 너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
 
김신웅 심리치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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